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로마 제국/역사 (문단 편집) === 정복 군주의 시대 (863 ~ 1025) === [[파일:Empire.strikes.back.rome.jpg|width=500]] 제국의 확장은 마케도니아 왕조를 전후하여, 863년 마르줄 우즈쿠프(Marj al-Usquf) 전투에서 멜리테네 토후국을 격파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10세기 경에는 내분으로 급속도로 위축된 이슬람 세계에 대해 일방적인 공세로 돌아선다. 이때부터 제국의 전쟁은 이교도들에 대한 성전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대두되었고, 니키포로스 2세는 모든 전사자를 순교자로 시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지만 제국 교회는 난색을 표했다.[* 이라클리오스(헤라클리우스)가 622년에 몸소 원정을 나가기 전 12년간 원정을 나가기 싫어서 안 나간 것이 아니었다. 그 사이에 콘스탄티노플에서 먼 지역은 어쩔 수 없이 내주더라도 가까운 지역은 최대한 지켰고, 군대를 건사하면서 훈련시켰으며, 또한 쿠데타로 제위에 오른 본인이 원정을 나가며 수도를 비워도 될 정도로 수도의 지도층들과의 유대를 쌓았고, 그 중에서도 제국 교회 측 및 그 대표자인 세르기우스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를 특히 잘 신경써주였으며 그러면서 동시에 본인의 요구사항(교회의 재물을 전비로 내어줄 것)을 요청하여 받아들여졌다. 이렇게 각계 지도층과의 관계에 시간과 공을 들여야 국정협조를 잘 받고 원활하게 굴러가게 되는데 니키포로스는 이러한 정치적 수완이 부족하여 그 군공을 갖고도 인망을 쌓지 못하다가 급기야 조카에게 암살당했다.] [[마케도니아 왕조]]를 개창한 [[바실리오스 1세]]는 남이탈리아의 대부분을 다시 제국의 영토에 편입시켰고, 이후 200년간 제국의 남이탈리아에서의 위치는 공고해졌다. 또한 바실리오스 1세는 [[아바스 왕조]]의 쇠퇴를 틈타 동부 전선에서의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동부 전선에서의 공세는 계속 되었지만 그 후계자인 [[레온 6세]]의 치세인 902년에 시칠리아가 완전히 아랍인들에게 함락되었고, 904년에는 제국 제 2의 도시 테살로니카가 아랍 함대에게 함락되어 약탈 당하기도 했다. 또한 여전히 유럽 - 아시아 이중 전선은 제국의 골칫거리였고 10세기 초 [[불가리아 제1제국]]은 [[시메온 대제]]의 활약으로 제국을 몰아붙이고 다시 한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위협했다. 결국 제국은 913년 시메온을 불가리아의 [[황제]]로 인정하였고, 이로써 유럽에는 [[동로마 제국|로마]], [[프랑크 제국|프랑크]], [[불가리아 제1제국|불가리아]]의 세 제국이 공존하게 되었다. 시메온은 계속해서 제국에 공세를 가했고, 제국군은 계속 패전하였지만 927년 [[불가리아 제1제국]]의 [[시메온 대제]]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제국에게 동부 전선에 집중할 기회를 주었다. 이 시기에는 니키포로스 포카스, [[요안니스 쿠르쿠아스]]라는 유능한 장군들과 그 후손인 황제 니키포로스 포카스, 요안니스 쿠르쿠아스(치미스키스는 별명) 등 위대한 정복자들이 연달아 등장했다. 934년에는 멜리테네를 탈환하였고,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제국의 승전이 계속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